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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의 발음 기호(연기식/강기식)

김 영 재 박사 / DR. YOUNG-JAE KIM 2020. 5. 28. 20:05

 

헬라어에는 기식(Breathing) 이라고 불리우는 두개의 발음 기호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기식에 해당하는 영문 단어인 'Breathing'의 뜻은 '호흡' 입니다.
이 기호는 알파벳 위에 표시되는 기호인데, 이 기호에 따라서 발음이 바뀌게 됩니다.
기식(Breathing)에는
연기식(Smooth Breathing), 즉 부드러운 호흡과
강기식(Routh Breathing), 즉 거친 호흡이 있습니다.
연기식은 헬라어 단어 위에 ὀ 표시를 하고,
강기식은 헬라어 단어 위에 ὁ 표시를 합니다.
연기식은 단어 위에 있는 따옴표의 꼬리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굽어졌지만,
강기식은 단어 위에 있는 따옴표의 꼬리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굽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연기식은 따옴표가
원래의 모양대로 표기되어져
있지만
강기식은 따옴표가
원래의 모양과는
반대로 표기되어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연기식은 발음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강기식은 발음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연기식은 단어 그대로 발음하는 반면에
강기식은 그 단어 앞에 'ㅎ' 이 있다고 생각하여 발음합니다.
예를 들어, 연기식으로 따옴표가 붙은 오미크론(ὀ)은 '오'로 발음하며,
                 강기식으로 따옴표가 붙은 오미크론(ὁ)은 '호'로 발음합니다.
또한, 연기식으로 따옴표가 붙은 엡실론(ἐ)은 '에'로 발음하며,
          강기식으로 따옴표가 붙은 엡실론(ἑ)은 '헤'로 발음합니다.
기식이란 한자어로 표기할때 氣息(기식)이라고 쓰는데, 이 의미는 '숨을 쉬는 기운' 입니다.
여기에서 '숨을 쉬는 기운' 이란 호흡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발음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며,  
연기식이란 부드러울 연(需)을 사용하여 부드러운 발음을 의미하며,
강기식이란 (말이)뻣뻣할 강(謽)을 사용하여 뻣뻣하고 거친 발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앞서 살펴본 바와도 같이
강기식은 거친 발음이기에 '오'를 '호'로 발음하며,
'에'를 '헤'로 발음하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강기식으로 따옴표가 붙은 오미크론(ὁ)인 '호' 는
영어로 정관사인 "The" 에 해당합니다.
이 정관사는 특정한 장소나, 특정한 인물을 지칭 할 때에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로고스(Λόγος)의 뜻은 '말씀' 인데,
호 로고스(ὁ Λόγος)의 뜻은 '그 말씀'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말씀은 헬라어로 호 로고스(ὁ Λόγος)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이 된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6장 14절에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에서 '그 선지자'는 헬라어로 호 프로페테스(ὁ Προφήτης)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 유대인들이 말하고 있는 '그 선지자' 는
바로 구약에서 예언한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메시야는 자신들의 민족인 유대인들을 로마의 속박에서 건져내주기를 바라는
정치적인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이는 그들이 잘못된 관점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해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 라고 했던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22절 상반부에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고 묻자
그들은 다같이 마태복음 27장 22절 하반부에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라고 외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는 헬라어로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라고 하며,그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이며,
히브리어로 '메시야' 즉 , '마쉬아흐'(משיח) 라고 하며,
이 '메시야' 의 뜻도 '그리스도와 같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입니다.  
그리고 '메시야' 와 '그리스도'는 구원자를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7장 15절 말씀에 "명절을 당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었는데,
당시에 죄수는 예수님과 마태복음 27장 16절의 말씀처럼 당시에 유명한 죄수인 바라바입니다.
그래서 이 둘 중에 하나를 풀어주어야 하는데,
마태복음 27장 17절 말씀에 "빌라도가 물어 가로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고 묻게 됩니다.
이 말씀에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 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믿어서가 아니라 다른 죄수인 바라바와 구분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바라바의 본명도 예수 바라바이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 바라바는 로마의 통치자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자로서
당시에 유대인들은 로마의 속박 아래 있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도 같이 요한복음 6장 14절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 라고 하며,
이어서 15절에 "억지로 잡아 임금" 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뿌리치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  마태복음 20장 28절 말씀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라는 자화상(自畵像)은
자신들이 처해 있는 현재의 상황인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빌라도의 물음에 주저없이 진정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정치적인 해방을 위해서 예수 바라바를 택한 것입니다.
이는 영원한 사망과 영원한 생명 중에서 
영원한 생명을 버리고, 영원한 사망을 택한 지극히 어리석고도 무지한 발로(發露)입니다.
이 발로의 의미는 바탕에 깔려 있는 생각이나 심리,사상 따위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