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십자가
소망의 십자가
- 김 영 재 -
죄의 십자가를 집니다.
그 죄의 십자가는 바로 죄인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인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집니다.
고통의 십자가를 집니다.
그 고통의 십자가는 바로 죄인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인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집니다.
슬픔의 십자가를 집니다.
그 슬픔의 십자가는 바로 죄인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인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집니다.
죽음의 십자가를 집니다.
그 죽음의 십자가는 바로 죄인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인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집니다.
저주의 십자가를 집니다.
그 저주의 십자가는 바로 죄인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인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집니다.
쓰라린 아픔의 십자가를 집니다.
그 쓰라린 아픔의 십자가는 바로 죄인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인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집니다.
이렇듯 예수님이 죄인된 우리가 져야 할 모든 십자가를 다 지셨기에
우리에게 있는 모든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
서슴 없이 죄를 짓고, 또 짓고, 계속해서 죄를 짓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죄의 무게에 짓눌려 주저 앉아 버리고 맙니다.
그런 우리들을 예수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우리가 죄를 짓는 만큼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지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지시기에
죄인된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땅에 존재하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그래서 죄인된 자들에게는 결코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돈도 명예도 세상의 권력도 결코 소망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근본적인 죄를 그것들이 결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그 어느 곳에도 결코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죄로 인해
모두 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소망이 없는
이 땅에서 소망을 찾을려고 갖은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허황된 만족일 뿐이고
결국에는 허무한 마음만 남게 됩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소망은 이 땅이 아닌 하늘에서 오는 것입니다.
바로 그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오셔서 인생들에게 참 소망의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 빛을 비추기 위해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버리셨습니다.
십자가는 원래 소망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소망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진 십자가는 저주의 십자가이어서
절망만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소망의 십자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소망이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주의 십자가라고 할지라도 소망이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에
그 십자가는 저주가 아닌 소망의 십자가입니다.
그 소망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비로소 죄가 사라집니다.
그 소망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비로소 고통이 사라집니다.
그 소망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비로소 슬픔이 사라집니다.
그 소망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비로소 죽음이 사라집니다.
그 소망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비로소 저주가 사라집니다.
그 소망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비로소 쓰라린 아픔이 사라집니다.
그 소망을 바라 본 자만이 진정한 소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소망은 십자가를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소망이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에
비로소 죄인 된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절망뿐인 이 세상과 그 절망뿐인 세상에 살면서 늘 절망 속에 파묻혀 사는 죄인 된 우리들에게
참 소망을 주시기 위해 참 소망이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져야 할 절망의 십자가를
소망의 십자가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이러한 은혜가 있기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이 있기에 우리에게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된 우리에게 진정한 소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가 있기에 세상이 비록 절망뿐일지라도 소망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절망뿐인 세상에 소망이 넘쳐나는 단 한 가지 유일한 이유는
바로 예수님이 지신 소망의 십자가뿐입니다.